보급차질에 EU-제약사 갈등악화 넘어 브렉시트 후유증 증폭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고갈되면서 접종 중단 사태까지 목격되고 있다.
비교적 일찍 백신 준비에 들어갔음에도 불거진 보급차질 사태를 둘러싸고 유럽에서는 브렉시트 후유증마저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페인 당국은 27일(현지시간) 수도 마드리드에서 백신이 부족해진 데 따라 2주 동안 접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북동부 카탈루냐 주(州)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임박했다고 덧붙였다.
주 당국자는 "당장 내일부터 냉장 시설이 텅 빌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백신 부족 우려가 커지던 와중에 스페인은 처음으로 접종 중단이 현실화한 나라가 됐다.
백신 대란을 두고 유럽연합(EU)과 제조사는 서로 책임을 돌리며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EU는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가 공급 물량을 계약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는 1분기 백신 공급을 기존에 약속된 물량의 40%가량밖에 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아스트라제네카를 상대로 EU 회원국밖에서 생산한 물량도 유럽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본사가 있는 영국에도 백신생산 시설을 두고 창궐이 심각한 영국에 백신을 공급하고 있다.
스텔라 키리아키데스 EU 보건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국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은 우리 구매계약의 일부분"이라며 "아스트라제네카가 EU에 백신 공급을 하기로 한 공장 4곳 중 2곳은 영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즉각 "계약상 공급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면으로 맞섰다.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EU 내에서 백신 원료를 배양하는데 생산성이 낮아 공급이 늦춰지는 거지, 의도적으로 늦추는 게 아니다"라면서 "영국과 백신 공급 계약은 EU보다 석 달 전에 체결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뒤 영국이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해 옛 영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그렇지 않아도 브렉시트에 배신감을 느껴온 유럽 주요국들은 영국의 이 같은 입장에 불쾌한 시선을 보내왔다.[
실제로 유럽 내부에서도 EU 집행위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EU 집행위는 27개 회원국에 공급할 23억회 분량의 백신 계약을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등 주요 제조사와 체결했는데, 이중 일부 계약은 미국, 영국보다 몇주 정도 뒤처졌다는 게 야당 정치인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EU 관계자는 "동네 정육점에서나 통할 얘기"라며 "우리의 선제적 구매 계약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번 백신 대란을 두고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영국 매체인 더타임스는 이날 "EU가 영국 공장에서 만든 백신 수천만회 분을 영국 간 갈등이 정치적으로 고조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더타임스는 특히 이 갈등에 "독일의 협박"이 포함됐다면서 앞서 독일 당국이 벨기에에서 생산한 화이자 백신의 영국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밝힌 점을 예시로 들었다.
또 업계에서는 EU의 압박을 "정치적 화법"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덧붙였다.
업계 한 고위급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올해 충분한 분량 이상의 백신을 확보한 만큼 다른 나라들에 이를 기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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