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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감 커져"…전공의 파업에 해외로 눈돌리는 간호사 늘었다
높은 업무강도에 적은 보상…美간호사 시험 응시자 1년새 82%↑
뉴스투데이 기자   l   등록 24-04-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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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오늘부터 진료행위 본격 투입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임시방편처럼 대우받는 직업을 누가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겠어요."

의정부 한 대학병원 간호사 조모(33)씨는 예전부터 염두에 둬왔던 미국 이민을 최근 더 진지하게 알아보고 있다.

그는 전공의 파업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더 커졌다고 했다.

다른 병원에서 오는 환자가 급증하면서 매일 많게는 환자 10명의 수술에 투입되는 등 업무 강도가 증가한 탓도 있지만,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에서 간호사가 처한 현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간호법 제정 논의 당시에는 '의사 면허 업무를 침해한다'며 안 된다고 했던 것들이,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필요로 고스란히 간호사 일이 됐어요. 필요에 따라 변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여기를 더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씨는 미국 이민을 고려하는 데 대해 "우리나라와 달리 간호사를 보호해 줄 간호법도 있고 업무강도 대비 보상도 좋다"며 "태어난 나라를 떠날 정도라면 그만큼 보상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게 아니겠느냐"라고 강조했다.

다른 대학병원 9년 차 간호사 박모(32)씨는 "전공의 파업으로 원치 않는 부서 이동이 늘면서 고통받는 동료가 많다"고 전했다.

중간 연차 이상 간호사 중에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진료보조(PA)나 수술보조(SA)로 차출되거나 교수가 레지던트를 대하듯 간호사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도 늘었다는 게 박씨 설명이다.

그는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제 주변 간호사들은 갈수록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며 "당장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의료 현장이 정상화되면 회의감에 그만두거나 해외로 취업하려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일부가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지만 간호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간호사 인력 해외 유출이 갑작스러운 현상은 아니지만 전공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서 '탈출'을 모색하는 간호사들의 움직임도 더 눈에 띄는 모습이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20년 이상 일해왔다는 한 간호사는 "1년에 10명 중 2∼3명은 그만둔다"며 "아예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 간호사로 취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미국 간호사자격시험 주관기관인 NCSBN 통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NCSBN에 따르면 미국 간호사 시험에 응시한 한국인 수는 2022년 1천816명에서 2023년 3천299명으로 81.7% 늘었다. 이 통계가 시험에 처음 응시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수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기준 650명도 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미국 간호사 시험을 치르는 한국인 수는 훨씬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별 순위에서도 한국은 2021년 상위 5위 바깥이었으나 2022년부터는 2년 연속 필리핀과 인도의 뒤를 이어 3위에 올랐다.

여기에다 호주가 한국 간호사 면허를 호주 면허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최근 취업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호주 이민을 준비하는 이들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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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미국 간호사 시험 응시 통계

[NCSBN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간호사들은 SNS 또는 지인을 통해 취업 문의를 받는 일이 최근 확연히 늘었다고 전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9년째 근무 중인 간호사 유현민(39)씨는 "SNS에서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이기도 하고 최근 관련 문의를 더 자주 받고 있다"며 "해외 간호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공의 파업 이전에도 이미 높았던 간호사의 업무 강도와 열악한 근무 환경을 생각하면 현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업무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이 국내 간호사들의 해외 진출에 영향을 충분히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한국에서 6년 정도 간호사로 일한 뒤 2007년 미국행을 택했다는 오주현(48)씨도 "해외 간호사 생활이 어떤지 묻는 분들은 꾸준히 있었다"며 "나아지지 않는 한국 간호계 현실, 외국 간호사에 관대한 미국·호주의 정책 때문에 앞으로도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분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서 14년째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소피아 유씨는 "한국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는 수직적인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환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간호사를 수평적으로 보며 함께 일하는 팀원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간호학계에서는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과 함께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희정 한림대 간호대학 교수는 "미국이나 호주는 간호사의 업무가 규정돼 있지만, 한국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며 "간호법 제정으로 업무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희 전 계명대 간호대학 교수도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도 국내 병원에 취직하지 않는 '장롱면허'도 많다"며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줄이고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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