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론데이는 콜론 시민들이 콜롬비아군의 파나마시티 행진을 막은 1903년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파나마의 사흘 연속공휴일의 마지막 날인 11월 5일이다. 11월 초는 파나마의 독립기념 달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달이다.
콜론 데이 히스토리
독립 선언에 따라 콜롬비아인들은 파나마에서 군사의 행진을 요청했었다.
1903년 11월 5일, 콜론스의 현지인들은 콜론주에 주둔하고 있는 콜롬비아군이 파나마시티에서 진격하지 않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콜롬비아인들이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해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했을 가능성이 있다.
11월은 파나마에서 "독립의 달"의 일종이다.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의 분할을 기억하는 분리의 날이다.
11월 5일은 콜론데이다. 11월 10일에는 로스산토스 마을에 의한 스페인에 대한 봉기가 인정되고, 11월 28일은 파나마 독립기념일(스페인으로부터) 이다.
매년 11월 5일이라는 콜론데이를 비롯해 기념행사 뒤에는 많은 설명이 있다.
콜론데이의 기념일은 콜롬비아로부터 파나마 독립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공식적으로 파나마는 1903년 11월 3일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콜롬비아 정부는 파나마시티로 진격할 것을 육군에 명령했다. 1903년 11월 3일, 파나마인들은 카리브 해와 가까운 중요한 지역인 콜론 시에 그들의 터전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파나마 당국은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분리를 위해 콜롬비아 육군이 참여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 용감한 노력을 기울였다. 협상은 성공적이었고 이날은 파나마 역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1903년 11월 3일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을 권위 있게 선언했다. 콜롬비아는 파나마를 공격하고 파나마시티를 붙잡아 저항군을 진압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콜론 국경의 파나마 방위군은 공격군을 설득하여 "침공을 취소하라"고 했다. 이것은 파나마에게 큰 승리였다. 단 한 발도 쏘지 않았다.
콜럼버스의 날을 기념하는 것도 파나마판 콜럼버스의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는 그 도시를 발견하지 못하고 콜론이라는 도시가 있는 섬을 아우르는 네이비 베이만을 방문했을 뿐이다.
이 도시는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때문에 설립되었고, 금을 캐는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크리스토발 콜론)를 감사하여 콜론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 뉴스투데이 파나마(https://www.newstodaypanam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